누가 서남의대를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애절한 가요의 제목처럼 글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서남의대를 전혀 알지도 기억하지 못하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그러나 서남의대생은 서남의대를 기억할 뿐 아니라, 서남의대 출신으로 기억당하고 있을까 지금도 두렵습니다. 혹시 명예훼손과 같은 불상사가 있을까 염려하여, 서남대학교의 역사를 되집어 보겠습니다.
서남대학교는 전북 남원시와 충남 아산시에 소재한 4년제 종합대학으로, 1991년 개교하고 2018년 2월 28일 폐교하였습니다. 지금 서남대학교는 존재하지 않으나 졸업생은 상당수입니다. 그만큼 함부로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2024년 최대 민생이자 대한민국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현안인 2024의교〮사태를 조기 수습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공유할 수밖에 없는 슬픈 사연이 바로 “서남의대생의 주홍글씨” 이야기입니다.
우선 서남의대에 대한 이해는 처음부터 교육병원이 없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서남대학은 1996년 광주의 적십자병원을 인수하였으며, 이 병원은 1955년 개원하여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부상자를 치료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비록 서남대학교병원으로 이름은 바꾸었지만, 서남의대생의 수련병원이 되지 못한 채, 2014년 휴업하고 2018년 문을 닫았습니다..
대신 광주 소재의 남광병원을 수련병원으로 지정 받아 교육과 수련이 진행되었습니다. 아래 표와 같이, 수련병원으로 남광병원의 전공의 수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감소하고, 진료과목도 6개에서 2007년 5개로 줄고 2009년 마취통증의학과마저 1년차 전공의가 배정되지 않으면서, 2011년까지 가정의학과, 내과, 외과, 정형외과 4개과만 전공의 정원을 받았습니다. 이때 기피과인 외과는 전공의 정원(1명)을 배정받고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1년 복지부는 수련병원 지정을 취소하였습니다..
서남의대 수련병원 남광병원의 지정취소 사유가 그야말로 기막힙니다. 남광병원은 그간 수련병원으로 재지정받기 위해, 신임평가 자료를 허위로 작성하여 병원협회에 제출해 온 사실이 마침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수련병원 지정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환자수와 병상이용률, 전속전문의 수 등을 부풀렸던 것입니다. 이에 남광병원은 불복해 복지부를 상대로 수련병원 지정취소 처분 무효확인소송으로 맞섰습니다.
과연 복지부는 취소 사유를 이전까지 전혀 몰랐을까요. 10층 건물 500병상인 남광병원의 처분 소송이 진행 중인 시점에, 현장취재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복지부의 실태조사가 지정취소 직전에 선행되었는데, 조사자 중 한 사람의 말인 즉, “보건소보다 못합니다.” 원래 복지부의 수련병원 지정 기준에 따르면, 병상이용률이 70%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즉 500병상인 남광병원은 적어도 350병상 이상 환자로 차 있어야 마땅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였다고 복지부는 판단하였고, 정작 남광병원은 마치 병상이용률이 70% 이상인 것처럼 허위자료를 냈던 것입니다. 실제로 서남의대 출신 전공의는 “남광병원은 수련병원이지만 환자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파견을 나가 실습을 했다. 남광병원에서는 그냥 공부만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지정 취소 당시, 복지부는 남광병원 지도전문의 수도 의심하였습니다. 남광병원이 제출한 자료와 실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문의 수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남광병원의 자료가 허위일 것이라는 정황이 있었고, 민원도 있었다. 남광병원이 제출한 서면자료와 실제 현장조사를 나간 결과 허위자료를 낸 사실이 확인됐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복지부 공무원은 “수련병원 지정 취소 사유는 충분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주 전형적인 뒷북행정이자 직무유기 내지 유착관계가 의심되는 ‘눈감아 주기’에 해당합니다.
환자도 별로 없었던 남광병원에서의 고통이 끝나자, 이제 서남의대생에게는 보훈병원과 광주기독병원에서 위탁 실습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대체로 학생들도 만족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임상실습 병원과 교수 수급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였습니다. 폐교 직전, 본과 2학년은 다음 학기에 내과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내과학교실 교수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년도까지 모두 8명의 내과 교수가 가르쳤는데, 이사장 비리사건이 터지자 하나 둘 씩 모두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저는 사학과 교수로서 20년 건국대학에서 근무하였는데, 저와 같은 인문계 교수는 교내 문제가 생겨도 떠나기 어렵습니다만, 의대교수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처와 같은 기초교수는 학교가 싫으면 굳이 장롱면허를 살리지 않더라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직하면 되는 정도에 그치지만, 임상교수야말로 언제든 개업을 택하던지 다른 병원의 봉직의사로 일자리를 바꾸면 됩니다.
이나마도 다행인 상태에서 서남의대생에게 끝내 거스를 수 없는 재앙이 닥쳤습니다. 드디어 2018년 폐교와 함께, 서남의대생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웃 전북의대와 원광의대에서 공부하고, 서남대학의 졸업장이 아닌 다른 대학의 졸업장으로, 의사면허 국가고시를 치뤘으며, 지금 어딘가에서 서남의대 출신이라고 떳떳이 말 못하며, 환자를 돌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서남의대 출신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환자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절치부심하여, 그러니까 아주 이를 빡빡 갈며,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가 자신이 서남의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전전긍긍하였다고 언론은 보도하였습니다.
서남의대가 폐교할 당시 언론의 관심을 그야말로 잠시 끌었다가, 2020년 공공의대 건립 논의가 갑자기 물살을 타면서 서남의대의 슬픈 이야기는 다시 회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의대정원은 일종의 티오 또는 쿼터제로 운영되어, 서남의대처럼 폐교가 이뤄지면 해당 정원만큼 다른 대학에서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운영됩니다. 원래 우리가 일상에서 '티오가 있네 없네' 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주한미군이 사용했다는 ‘Table of Organization’(조직 편성표)에서 유래합니다. 군사문화가 일상화된 사례입니다.
정부는 2020년 7월 23일 폐교된 서남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하고 3년만인 2023년 3월 개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학부 의대라기보다 의학전문대학원 개념으로, 역학조사관, 감염내과 등 필수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일종의 ‘의무사관학교’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정부는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임상실습 등을 위해 필요한 교육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과 남원의료원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지방의료원, 국립대병원, 국립암센터, 산재의료원, 국립재활원, 국립정신병원, 군의료기관 등 공공보건의료기관이 교육협력병원으로 지정된다고도 설명을 추가하였습니다.
아주 귀에 익는 말이 아닙니까. 바로 2024 의·교사태에서 도돌이표처럼 회자되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학생들을 누가, 어떻게 가르친다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부속병원 없이 공공의료기관을 교육협력병원으로 지정해 임상실습 교육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서남의대는 부속병원이 한번도 없었던 사실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자신들의 교육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던 기억을 갖고 있는 서남의대 출신들은 “책임 떠넘기기 급급했던 정부 부처들”을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공의대 실패 시 책임질 각오돼 있나”를 정부와 관료들에게 묻습니다. 이 역시 2024년에도 귀에 익는 공방입니다. 서남의대가 신설될 때, 의료계가 반대했던 논리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의료계와 학생들은 공공의대 신설과 관련하여, 꾸준히 부실 교육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부는 눈을 감았던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 상황입니다.
오늘날 서남의대생에게는 다시 서남의대가 거론되는 상황 자체가 여전히 불편합니다. 특히 공공의대나 지역의대를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도, 자신들의 서남의대 경험과의 오버랩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서남의대 출신은 정부가 내놓은 공공의대 신설 계획 자체가 아예 이해조차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쓰라린 경험 때문입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실패한 정책을 왜 반복하려 드는지를.
그리고 스스로 참담한 심정을 고통스럽게 털어놓습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교육부가 인정한 서남의대에 들어갔지만, ‘부실의대’라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그 꼬리표를 떼기 위해 서남의대생들은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 결과는 결코 모든 서남의대생에게 똑같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너무나 어린 학생들이었고, 너무나 젊은 청년들이기 때문입니다.
의사로서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무한한 개인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좋은 교육환경 좋은 교수 없이는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독학으로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거나 과거 사법고시를 통과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혹시 정치인이나 관료가 자신들의 과거 경험에 터잡아, 2024 의교〮사태와 같은 무모한 정책을 강행한 것은 아닌지 궁금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서남의대생들에게는 여전히 서남의대를 졸업했다고 하면, 부실한 교육을 받은 의사로 보는 게 현실이라는 사정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학습권 수호를 위해 남원과 서울을 오가며 교육부와 복지부, 국회를 찾아 뛰어다녔고, 이도 부족하여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갔던 서남의대생들은 대체로 공공의대 설립 자체에 부정적입니다 (아래는 당시 사진). 정부는 2024년 3월 공공의대(국립공공의료대학원)를 개교로 목표를 세웠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애당초 없었습니다. 남원시 등에서 의대 설립 부지를 매입했다는 소식만 들릴 뿐인 상황에서,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이 서남의대 출신들에게는 누구보다도 큽니다. “실력 없는 의사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면, 재정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교수진 등 교육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 현재는 그런 고민 없이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것 같다”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서남대학교는 설립자의 횡령 사건이 터지자 마자 폐교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정작 폐교되기까지 6년이 걸렸습니다. 서남의대생이 예과에 입학해서 본과를 졸업할 때까지의 기간입니다. 이들의 슬픈 과거에서, 오늘날 2024년도에 입학하고 현재 휴학 중인 학생들, 그리고 2025년 증원 이후에 입학할 학생들이 겪을 험난한 과정이 미리 예시된 셈입니다. 서남의대 설립 당시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2024년 의대증원만 늘리면 의사수가 늘고 의사 양성은 그냥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2025학년도 신입생이 졸업하면서 부실 교육 이야기가 나오면, 무차별적으로 서남의대생과 같은 주홍글씨가 붙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입니까, 교육부 장관입니까, 복지부장관입니까, 실무 관료입니까, 지역공공의대를 입법발의한 국회의원입니까. 2025년 신입생이 졸업하는 때, 아무도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자신 있게 “나는 25학번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남의대의 역사는 2024년에 다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서남의대생들은 자신들의 학습권 수호를 위해 전국을 뛰어다니며 느꼈던 불안감이 점차 분노로 바뀌기 시작하는 과정을 경험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외부에서는 서남의대가 폐교되면 그 정원을 가져갈 생각만 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분노가 분출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교육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의는 철저히 외면당했으며, 이미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했던 것입니다. 어디에 호소해야 할 지 모르는 학생들은 마냥 거리로 나와 집회를 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자연 불안감이 좌절감으로 그리고 끝내 분노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최대 피해자는 서남의대생입니다.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정부나 지자체의 노력은 없었습니다. 더욱이나 정치권이나 언론의 관심은 의사 교육이 아니라 의사 숫자에 머물렀습니다. 학생들을 어떻게, 어떤 의사로 양성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전혀 없었고, 서남의대가 폐교되면 어느 지역에서 정원을 가져갈지에 온갖 관심이 쏠려 있었을 뿐입니다. 실제로 불과 몇 년 후, 2020년 공공의대 논의와 함께 의대증원이 추진되면서, 서남의대는 의대생 티오의 먹이거리에 불과하였습니다.
2020년 공공의대 논의에서와 같이, 2025학년도 교수진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그리고 필수의료와 지역공공의료에 헌신하는 의사들을 양성하겠다는 취지이기에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교수들의 충원은 가능한 것인지, 정작 궁금합니다. 더욱이나 사명감이 의대교육으로 가능할 지 그야말로 의문입니다. 오히려 필수의료나 지역의료 분야에서 종사하는 의사들이 사명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전문가로서 존중해주는 게 먼저 선행되어야 마땅합니다. 실제로 의학전문대학원제도도 이공계 출신 의과학자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도입했지만, 지금은 의전원 대부분이 사라졌을 뿐아니라, 의전원체제가 유지되는 동안 의과학자는 얼마나 많이 양성됐는지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2020년처럼, 2024년 각 대학은 의대 교수나 학생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증원에 적극적이었으며, 임기제인 총장은 대부분 교육부의 증원 방침에 적극 호응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의대생의 합격점수가 대학 전체의 위상과 인기를 끌어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은 다른 전공의 교수와 학생들도 대개 공유합니다. 당시 정부가 공공의대 신설 계획을 발표한 후, 지역별 신설 의대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대부분 부속병원의 신설이나 확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주변 공공의료기관을 교육병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만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2025학년도 이후 신입생의 장래에 대해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는 아무도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며, 희생되는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남의대생의 경험으로부터 2025년 이후 모든 상황이 예측 가능합니다. 서남의대생의 경우, 위탁교육이나 교육협력병원 관계로는 한계가 있었고, 학생들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속병원과 달리 위탁교육이나 협력병원에서 가르치는 임상교수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학생들을 교육하는지 분명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학생 교육을 체계적으로 담당하면서 전공의 수련병원으로서 역할도 할 수 있는, 일정 조건과 시스템을 갖춘 의대 부속병원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입니다.
서남의대 폐교는 서남의대생에게만 피해를 발생시키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선 서남의대생을 수용한 전북의대생들 등도 피해자에 포함됩니다. 갑자기 서남의대생이 편입되자, 전북의대는 교수나 시설 미비로 이전보다 부실한 교육을 제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남의대생 편입으로 의대 정원이 갑자기 폭증하면서 전북의대의 젊은 임상교수들이 대거로 이탈하였습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의대교수들에게는 항상 옵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의대 교수로서 자존감, 자부심도 있지만 경제적인 부분이 외부와 차이가 너무 심해, 2024 의·교사태 이전에도 젊은 임상교수들의 이탈은 많았으며, 따라서 2024년 졸속 의대증원으로 그 같은 이탈은 가속화될 것이 자명합니다. 한마디로, 서남의대 폐교의 파장이 전북의대까지 미친 것처럼, 2025학년도 증원은 단지 신입생 뿐 아니라 기존 학생들을 한꺼번에 재앙으로 몰고 갈 것이 뻔합니다.
학생들은 교수 뿐만 아니라 전공의와 다른 의료진에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가 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진짜 목적이 필수의료 분야 중심의 인재 양성이라면, 교육병원으로 지정하려는 병원의 구성원과 시스템도 그리 되도록 준비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의료교육의 플랜과 평가는 정부가 아니라 의학 교육 관련 전문기관이어야 바람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바로 그 같은 전문 평가인증 기관으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존재합니다.
2020년의 경험과 서남의대의 경우에 터잡아, 정부 관료들에게 묻습니다. 무엇보다도 재정투입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부의 결정권자는 10년, 20년 후 공공의료, 지역의료, 필수의료가 기대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책임질 각오가 되었는지. 그리고 2024년 의교정책을 추진한 책임자들, 구체적으로 대통령, 국무총리, 해당 장차〮관, 실무관료는 책임정책의 구현을 위해 추진자를 실명화할 의향을 명시화할 수 있는지를, 또한 향후 구상권에 대해 책임질 의사가 있는지를 서면화할 정도로, 정책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그만큼 준비하였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이제 물러났다고 생각했던 코로나19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날씨가 쌀쌀해지면 코로나 균은 극성을 떱니다. 그럼 누구보다 의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시점이 바로 당장입니다. 돌이켜 보면, 2020년 의대증원의 정부 방침이 취소된 사유는 바로 코로나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힘겨루기하기에는 국민의 절박함이 당시에 너무나 컸던 것입니다. 현재 2024년 8월도 정부와 의료진, 국민들 모두 방역과 확진자 진료에 대비하여야 마땅합니다. 무엇보다도 의사들이, 특히 전공의들이 제자리에 돌아와야 합니다. 단언컨대, 정부만 양보하면 끝납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그 시기가 있습니다. 정말로 좋은 정책이라면 시간을 갖고 추진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의사들이 괘씸하다고 마냥 밀어붙이면 그때는 정책이 아니라 오기에 불과합니다. 오기로는 국사보다 훨씬 작은 스케일의 가정사마저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오기는 분열과 불화 그리고 모두 쫄딱 망하는 외통수 길로 끝납니다. 그것보다도 의·교문제는 훨씬 중대하고 심각합니다. 누가 진정성 있는지는 코로나와 같은 위급상황에서 잘 들어 납니다. 정부가 양보해야 마땅하며, 그래야 비로소 정책의 진정성도 입증됩니다. 이보다 한 걸음 양보하더라도, 의정이 타협하기에 아주 좋은 명분이 코로나 재유행으로 다시 부상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폐교 당시 서남의대 신입생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폐교직전 신입생 면접에서, 일부 부모들은 걱정하면서도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며 반기는 듯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일단 입학하면 다른 의대로 편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이미 폐교 가능성이 상당 시간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폐교전까지 서남의대의 입학점수는 실제로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래도 의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오늘날에도 대학 전체의 위상과 인기도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의대증원을 각 대학 총장들이나 재단이 내심으로 반긴다고 봅니다. 특히 인구구조의 변화로 말미암아 발생한 학생부족으로 시달리는 지방대학일수록 그렇습니다.
의대 납부금이 고액인 사실도 증원이 매력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의대증원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하며 눈을 찔끔 감는 셈입니다. 굳이 옹호한다면, 정부가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해결해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부실교육이 될 수밖에 없는 사정도 모르지 않습니다. 굳이 서남의대를 벤치마킹하지 않아도, 현재 의대의 운영 상태를 잘 살펴보면, 금방 깨닫을 수 있는 대단히 단순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굳이 현실을 무시하고, 더욱이 희생자가 학생이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것은, 한마디로 비교육적이며 비윤리적입니다.
벌써 의대증원으로 사교육계가 들썩입니다. 이미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학생 상대로 의대입학반이 붐을 이룰 정도입니다. 아마도 가장 큰 수혜를 입을 집단은 사교육계, 즉 학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으로 학령 학생이 줄어든 판국에, 의대생 입학시장은 학원계의 오아시스입니다. 너도나도 의대 준비생이 됩니다. 직장인도 기존 의대생도, 아니 전국민이 의대입학 준비에 매몰됩니다. 오로지 돈 버는 쪽은 학원입니다. 여기에 일부 언론도 그 수익을 나눠 먹게 되니, 자연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서남의대생의 경험과 주홍글씨는 초등학생에서부터 직장인까지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과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당시 폐교에 즈음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서남의대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서남의대에 진학하려고 기를 썼던 이유는 “그래도 의대이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는 다루지 않더라도, 서남의대와 같은 의대에서 공부한 들, 과연 현재 의사가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장래에도 공유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나 의대를 이전과 똑 같은 프라이드로 다닐 수 있을까요.
아주 옛날에 ‘콩나물교실’이라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덕수국민학교는 한 반에 백명이 훨씬 넘었습니다. 물론 경기중학교에도 가장 많이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상당수는 그냥 평범한 중학이나 직장을 다녔습니다. 백명이 넘는 덕수국민학교의 교실 상황이 이제 2025년부터 증원된 의대에서 재현됩니다. 악몽입니다.
특히 증원 직후 입학하는 의대생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육받고 수련받은 의사들에게 치료 받는 국민에게도 악몽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입학시킨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서남의대생의 주홍글씨에 시달릴까 노심초사하며 의대 6년은 물론 수련의 4~5년 그리고 직업인 의사로서 자리잡을 5년 이상 기간, 모두 15년 이상 고통의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2025학년도 신입생과 유급생에게는 콩나물교실이 아니라 격투기장과 같은 상황을 초래할 것입니다. 우선 학생 상호 간의 집단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일부 서남의대생과 같이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의사가 될 수도 있지만, 상당수 학생들에게는 격투기장과 같은 교육 환경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몽입니다. 그리고 의사로서 평생을 좌우하는 수련은 어떻습니까. 유능한 의대교수가 상당수 떠나버린 전장터에서 아무런 보호와 가르침 없이, 전공의 과정을 마쳐야 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악몽입니다.
서남의대생은 한 학년에 50명이 채 안됩니다. 2025년부터 정부 의도대로 의대 증원이 늘어나면, 전체 의대생은 그 보다 30배가 넘습니다. 만약 정부의 계획대로, 빅5 내지 빅10이 전공의 없이 운영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수련을 받을 기회는 낙타가 바늘 구멍 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의대증원일까요. 그것도 기습작전과 같은 증원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일까요. 단언컨대, 기존 의사와 의대생만 피해자가 아닙니다. 신입생은 모두 피해자입니다. 설사 증원의 티겟을 움켜잡은 신입생과 학부모 역시 희생자입니다. 이 모든 슬픈 현실이 서남의대생의 자기 고백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사회적 공익이 의대생 개인의 사익보다 편익이 크다는 이유로 의대증원을 추진하는 정부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까. 결정문 어디에도 진지하고 심도있는 고민과 공부의 흔적은 유감스럽게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특히 MZ세대 학생의 부모님들에게 서남의대생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좋은 교훈으로 깊이 새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최근 베드민턴 안세영 선수에게서 시대의 변화를 느낍니다. 그래도 올림픽 금메달의 세계 최고의 선수가 아닙니까. 누구보다 강한 멘탈을 지닌 선수이며, 안세영의 금메달 전략은 상대 선수가 지칠 때 위닝샷을 날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만큼 멘탈이 강함에도 기성세대와는 다른 생각으로 살아 가는 모습을 요즘 우리 국민 전체에게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어떻게 어렵사리 2025년 신입생 의대생을 만들었다고 합시다. 부모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재앙의 시간은 다가옵니다. 2025년 의대 신입생은 부모와 다르다는 느낌이 누구보다 분명한 사람은 부모입니다. 자, 이제 묻습니다. 홍두깨 같이 밀어 부친, 준비되지 않은 증원 의대와 미비한 수련 과정을 당신들 자녀들은 과연 견디어 낼 수 있을까요. 서남의대생 중 적지 않은 인생 탈락자가 발생한 것과 같이, 당신들 자녀들의 미래는 확실하다고 장담하실 수 있을까요. 서남의대생의 주홍글씨는 당신들 자녀 뿐 아니라, 당신들 자신들에게 붙어 다니리라는 고민도 한번쯤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이제 서남의대생의 주홍글씨 기억이 의대25학번 주홍글씨의 미래로 확산되는 두려운 상황을 상상하면 정말 끔찍할 따름입니다.
서남의대에게 폐쇄 명령이 내려짐에 따라, 2018년도 수시나 정시 모집에 응시했던 학생들은 아예 지원과 입학 자체가 중지되고, 만약 합격해 있는 상태라도 타 대학 전형을 준비해야 했던 상황이 벌어졌던 사실을 2024년 현재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의평원이 기존 인증기준에 대한 지속적 준수로 의대증원 이후에도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선언한 사실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증원으로 인한 부실교육이 기존의 의대생에게, 특히 1학년생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하는 학부모들이 의대증원 반대에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설사 이미 입학하였더라도 2018년 서남의대생과 같은 운명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가능할까요. 설사 어떠한 보장을 각서화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관계 장관과 관료는 해당 학생들이 졸업하고 의사자격시험을 보면서 부실교육이 입증되어 대량의 학생들이 부실교육의 피해자임이 드러났을 때, 이미 그 자리에는 없습니다.
서남의대생의 주홍글씨는 단순히 2025년도 의대 입학생부터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다니고 있는 의대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체 국민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제 의료쇼핑이라 빈정대는 상황이 새로운 상황에서 새롭게 전개될 전망입니다. 2025년 이후 의대생의 주홍글씨에 터잡아 국민들은 의료쇼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 우수 의대생이나 전공의 그리고 젊은 의사들은 이 나라를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의대생이나 의료인력은 우수하다고, 해외에서 평가가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의료는 붕괴됩니다. 이때도 공공의료와 지역의료 그리고 필수의료를 말로만 외치던 정치인, 관료, 학자들은 그 자리에 없습니다. 무책임의 극치입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이 살아 있습니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꺾이지 않음 (resilience) 밖에 없습니다. 끝이 끝이 아닙니다. 아직도 길은 남아 있으며, 지친 여정에는 오히려 앞길이 순식간에 쉽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그냥 희망사항이 결코 아닙니다. 역사가 그렇다고 가르쳐 줍니다. 역사의 교훈인 셈입니다. Too Late? No. Not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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